2010년 5월 11일 화요일

[책이야기] 크립토노미콘

미국과 영국이 이차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암호전에서 일본과 독일을 앞질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독일과 일본의 암호는 미국과 영국에 의해 완벽하게 해독되었다. 흔히 최초의 컴퓨터는 탄도계산을 위해 개발된 Eniac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전에 암호 해독용 컴퓨터가 먼저 개발되었다고 한다. Colossus라는 이름의 이 컴퓨터는 비밀로 분류되어 아직까지도 자세한 사항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Wikipedia에 실린 Colossus의 이미지


이차대전 때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장비를 이용했는데, Colossus는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컴퓨터였던 것. Colossus의 개발을 주도한 것이 현대 디지털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Turing이다. Turing은 이차대전 때 암호 해독 업무에 종사했다.

소설 "크립토노미콘"은 현재(혹은 근미래)와 이차대전을 오가며 암호와 일본이 숨겨놓은 금괴 탐색을 그린 꽤나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이차대전 때 정보전에 뛰어든 워터하우스와 현대의 해커인 그의 손자 워터하우스가 주인공이다. 소설 속에서 할아버지 워터하우스는 이차대전 직전 프린스턴 대학에서 튜링과 친구가 되고, 당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천재들이었다.

암호는 "모순"이다. 적군의 암호를 깨고, 또 적군이 깰 수 없는 암호를 개발하는 "모순"이다.

적의 암호를 깼다고 해서 그 정보를 사용하면 암호가 깨졌다는 정보를 적에게 주게 되고 적은 또 암호를 바꾸게 될 테니 암호 해독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고 정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껏 암호를 해독한 의미가 없다. "모순"이다.

또 깨기 어려운 암호일 수록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려우니 그 또한 "모순"이다. 오죽하면 미국은 이차대전에서 나바호 부족을 암호병으로 채용했을까. 나바호 족 암호병의 이야기는 "엑스파일은 인종주의" 편을 참고하세요~~~

출판사는 책세상, 저자는 닐 스티븐슨으로 사이버펑크 계열의 SF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닐 아저씨의 다른 사이버 펑크 소설보다 이게 훨씬 재밌다. 닐 아저씨는 튜링에게 무슨 성적 호기심 같은 거라도 있는지, 다른 소설에서도 거듭 튜링을 언급한다. 혹시 닐 아저씨는 동성애자?

Alan Mathison Turing은 영국의 수학자로, 이차대전 중 추축국(독일-일본-이탈리아)의 암호를 해독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튜링 머신이라는 이론상의 자동 계산 기계를 고안하여 단순한 계산기와는 다른,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현대의 디지털 컴퓨터의 기초를 놓았고, 더 나아가 컴퓨터에 무작위 요소를 도입하여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정립해서 인공지능 연구의 기초를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놀라운 사람이? 혹시 튜링도 외계인?

하지만, 소설에도 나오지만, 현실에서의 튜링도 동성애자였다. 나치는 유태인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가스실로 보냈는데, 정도는 달랐을지언정 당시 유럽과 미국, 소련, 체제와 국경을 막론하고 동성애는 일종의 정신병이거나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다. 전쟁 중에는 튜링의 놀라운 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튜링을 기다리는 건 "치료"를 위한 감옥행 티켓이었다. 전쟁 중의 공로와 천재성을 높이 산 영국 정부가 튜링을 국립호텔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튜링은 결국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현대의 백설공주는 계모가 준 독사과가 아니라 자진해서 독사과를 먹었고, 어느 왕자도 키스로 튜링을 되살려주지 않았다...

디지털 컴퓨터의 아버지 Alan Mathison Turing.
천재라기보다는 노이로제에 걸린 회사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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