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세 명의 얼간이가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영웅처럼 보이지만 한 번도 진짜 영웅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도 여러 번 넘겼고, 그러는 동안 FBI요원을 알게 되었으며, 그와 그의 파트너를 돕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애국심으로 나라를 사랑했고, 악의 세력들을 찾아내기 위해 끝없이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에서는, 이들처럼 이상만을 쫓고, 올바른 일을 위해서만 싸우며, 그 싸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항상 이길 수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 9번째 시즌 15번째 에피소드 "인간 시한 폭탄(원제 Jump the Shark)"에서. (http://prozac.pe.kr/xfiles/ 에서 빌려왔습니다.)
엑스파일 시리즈에 나오는 조연들 중에 항상 세 사람이 몰려다니는 무리가 있으니, 이름하여 The Lone Gunman, 외로운 총잡이들이다. 이 총잡이 삼인조(실제로 총을 잘 쏠지는 몹시 의심스럽다)는 UFO와 정부의 음모를 추적하여 폭로하는 것을 삶의 의의로 삼고 있는 해커 집단이다. 또 외로운 총잡이는 이 세 사람이 발행하는 신문의 이름이기도 하다. 외로운 총잡이는 첫번째 시즌 16번째 에피소드 "UFO의 정체(원제 E.B.E)"에서 처음 출연했다. (E.B.E는 Extra Biological Existence 외계생명체의 약자가 아닐까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외로운 총잡이들은 멀더를 능가하는 꼴통들이요, 편집증에 사로잡힌 음모이론가들이다. 로즈웰 사건을 비롯해서 미국 정부는 외계인 사건을 은폐하고 있고, 케네디는 군산복합체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정부는 빅브라더라는 걸 코털끝만치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얘네들은 사담 후세인과 모니카 르윈스키가 인조인간이라고 자기네 신문에 기사로 떠벌리기까지 한다. 멀더는 그래도 잘 생겼고 FBI 특수요원이고 학벌도 좋지만 얘들은 대체 뭘 믿고 요따위로 노는걸까? 비디오도 영 안 받쳐주는데 말이다. 인물지상주의적이고 학벌지상주의적인 논평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_-;;... 이 총잡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정부의 음모를 폭로하는 신문 "The Lone Gunman"의 머릿기사, "텔레토비는 세뇌도구"
먼저, Frohike. 프로하이크라고 읽어야 할 지, 프로히키라고 읽어야 할 지 헷갈리는데 뭐 프로히키라고 읽자. 좀더 촌스러우니깐. 나이를 어느 정도 다량 섭취하신 것 같은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 키는 난장이 똥자루요 머리는 벗겨졌고 삼인방 중에 제일 늙어 보인다. 면도도 잘 안한다. 대다수 여자들이 싫어하는 요소는 참 골고루도 재고로 보유하신 분이다. 원래 컴퓨터 해커 출신이고 스컬리를 사모한다. 삼인방 중에 제일 정이 깊은데, 멀더가 죽자(죽었다고 알려지자) 혼자 술에 취해 술병을 들고 울면서 스컬리를 찾아간다. 기회를 노려 스컬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고도의 작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다음 Langly. 원어 발음이야 랭리에 가깝겠지만 랭글리라고 하는게 발음이 편하다. 키가 크고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역시 해커 출신이다. 이 선수도 연세가 어찌 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연세가격을 다하지 못한다는 건 마찬가진데, 꼴 사납게 머리를 길게 기르고 록 뮤지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을 오가는 드라마 속에서 아직도 6,70년대 히피 문화에 포옥 빠져 살고 있으니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드스탁 록 페스티발의 부활이라도 꿈꾸는 걸까. 늘 프로히키에게 자기가 더 뛰어난 해커라는 걸 인정하라고 윽박지른다.
마지막 멤버는 John Fitzgerald Byers. 1963년 11월 22일 생으로 이 선수의 생년월일만이 삼인방 중에서 정확히 알려져 있다. 왜냐면,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날 태어났다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기 때문.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늘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수염도 깨끗하게 손질하고 다닌다. 원래는 연방통신위원회 FCC의 홍보요원이었다. 해커를 단속해야 할 연방통신위원회의 공무원께서 어쩌다가 해커들과 어울리게 된 것일까. 여자 때문이다...
왼쪽에서부터 프로히키, 랭글리, 바이어스
삼인조가 결성된 사연은 5번째 시즌 첫번째 에피소드 "음모 속의 여인(원제 Unusual Suspect. 우리나라 방송분에서는 첫번째 에피소드는 아니었다)"에 나온다. 때는 1989년, 바야흐로 PC의 시대가 개막되던 그 즈음, 한 정보통신 관련 전시회가 발단이 되었다. 프로히키나 랭글리는 케이블 TV 유료 채널을 공짜로 보게 해주는 요상한 장치(당연히 불법이고 뻑하면 불이 난다) 같은 걸 들고 전시회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바이어스는 전시회장에서 캠페인 버튼을 나눠주는 시시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왠 묘령의 여인(사실 하나도 안 예쁘고 상당히 겉늙어 보인다. 참 눈도 낮다) 수잔이 도움을 요청하고 미인계에 빠진 그들은 감히 국방부의 극비 통신망에 침투한다. 수잔은 FBI 요원의 추적을 받고 있었는데, 욘석이 바로 당시에는 신참이었던 멀더.
세 남자를 하수구에 빠뜨린 수잔.
고작 이 정도 여자 땜에 인생을 망치다니...
수잔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삼인조를 물귀신처럼 궁지에 끌어넣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에 삼인방은 이 여자를 슬슬 의심하는데, 수잔은 추적장치가 심어져 있다면서 손수 생이빨을 뽑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하신다. 근데 진짜로 이빨에 전선 나부랑이가 연결되어 있다. 헷갈리던 차에 수잔이 검은 승용차로 납치되는 걸 보고서 삼인방은 여자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바이어스는 아예 사랑에 빠져 버린다.
역시 여자란 요물이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새디스트 달기, 주나라를 멸망시킨 웃지 않는 미녀 포사, 오나라를 멸망시킨 가냘픈 서시, 당 현종을 눈 멀게 한 양귀비, 알렉산더 대왕을 부추겨 페르세폴리스에 불을 지르게 한 창녀 타이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오간 클레오파트라. 남자의 신세를 조져버린 많은 여자들. 나도 신세 조져도 좋으니 이런 미인과 사랑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김윤아나 심은하 같은 여자하고(*^o^*)... (제가 솔로 부대 고참 부대원이었던 시절에 쓴 걸 옮기다보니 이런 대목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저나 김윤아씨, 심은하씨는 모두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스캔들에 휩싸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m__m)
알고보니 수잔은 극비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던 과학자였고, 정부의 음모를 폭로하려다 쫓기게 된, 80년대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도바리를 치게 된, 운동권이었다. 삼인방과 멀더는 수잔의 뒤를 쫓던 "그림자 집단" 행동대원들(이 행동대원들의 리더가 X이다)과 충돌하고 멀더는 생화학 무기에 중독되어 외계인이 나타났다고 헛소리를 해댄다. 해커라는 집단이야 원래 편집증 증세가 심한 분들이고, 멀더는 타고난 또라이라는게 여기서 증명되어 버렸다. 삼인방과 멀더, 아주 천생연분이다.
수잔은 나중에 6번째 시즌 19번째 에피소드 "음모 속의 여인, 10년 후(원제 Three of a Kind)"에 다시 한 번 나오는데 그때까지도 바이어스는 그녀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총잡이들은 CIA든 국방성이든 NSA(National Security Agency 국가안전국. CIA보다 더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통신감청 기관이다)든 마음대로 해킹을 해서 멀더에게 정보를 주고, 심각하고 무겁게 나가기 쉬운 극의 분위기에 코믹한 요소를 가미하는 감초 같은 존재다. 외로운 총잡이가 엑스파일 매니아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외전처럼 독자적인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Jump the Shark. Jump the shark란 TV쇼나 가수, 배우들이 최고로 물이 올랐다가(?) 이 시점을 기점으로 잊혀지거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전환점을 의미하는 신조어란다. 우리말로 하면 '한물 가다'쯤 된다고 할까?(http://prozac.pe.kr/xfiles/ 에서 빌려온 이야깁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엑스파일은 7번째 시즌에서 끝냈어야 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쓸데없이 질질 끌며 질을 떨어뜨리는 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8시즌부터는 멀더도 잘 등장하지 않고 스토리도 갈팡질팡하기 시작한다. 엑스파일도 Jump the Shark, 한물 가기 시작한 것이다. 엑스파일 제작자들의 망가져 가는 시리즈에 대한 자의식을 반영한 것이 9번째 시즌 15번째 에피소드의 "Jump the Shark"이다. KBS에서 붙인 제목은 "인간 시한 폭탄". 엑스파일 제작자들, 이런 자의식을 발동한 끝에, 아예, 숫제, 총잡이들을 단체로 죽여버린다!
우리의 외로운 총잡이들도 음모의 추적자로 현역으로 뛰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나이 먹도록 한 일이 고작 쓰레기 같은 신문을 만든 것 밖에 없고, 빈털털이 신세가 돼서 컴퓨터까지 모조리 빼앗긴다. 마지막 임무로, 세상의 종말을 앞당기려는 종말론자들의 생화학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 총잡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지들이 무슨 터미네이터인 줄 아나). 그 공로로 한평생 정부의 음모를 파헤치던 총잡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앨링턴 국립묘지에 묻힌다.
"옛날에 세 명의 얼간이가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영웅처럼 보이지만 한 번도 진짜 영웅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도 여러 번 넘겼고, 그러는 동안 FBI요원을 알게 되었으며, 그와 그의 파트너를 돕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애국심으로 나라를 사랑했고, 악의 세력들을 찾아내기 위해 끝없이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에서는, 이들처럼 이상만을 쫓고, 올바른 일을 위해서만 싸우며, 그 싸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항상 이길 수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총잡이들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나레이션이다. 멀더는 또라이, 외로운 총잡이들은 얼간이. 역시 천생연분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그렌다이져의 주제가가 옳은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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