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1일 화요일

[X-Files] About Mulder #4

잠들지 못하는 남자, 멀더.

멀더의 집에는 침실이 없다. 아니, 있기는 있는데 창고로 쓰고 있다. 그럼 잠은 어디서 자나? 소파에서.

멀더가 침대에 눕는 건 병원에 입원했을 때(멀더나 스컬리 모두 죽을 고비를 주구장창 넘기면서 허구헌날 병원에 입원, 상태는 위독, 그러고도 맨날 살아나고 후유증도 별로 없다. 대단한 인간들이다)나, 출장 가서 모텔에 묵을 때뿐. 그리고 간혹 나오는 정사 씬에서만이다.

누워서 잠들지 못하는 남자라고 하니, 갑자기 예전에 "나무야, 누워서 자려무나"였던지, "나무야, 누워서 자렴"이었던지, 아니 "나무야, 누워서 자지 않으련"이었던지 하는 무슨 아동 문학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누워서 잠들지 못하는 남자 하면 멀더 말고 떠오르는 유명한 영화 주인공이 있지. 바로 너무도 인간적인 청부살인업자를 그린 "레옹". 레옹은 항상 소파에 앉아서 잠을 잔다. 그것도 항상 장전된 권총을 한 손에 들고서.

레옹은 그렇게 무장한 상태로 선잠을 잔다. 결코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청부살인업자는 또 언제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목표가 될지 모른다. 레옹에게 청소를 당한 사람의 패거리가 복수를 할 수도 있고, 청부를 의뢰했던 조직으로부터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제거 당할 수도 있고,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 특공대로부터 습격 당할 수도 있다. 청부살인업자 레옹은 이유 있는 편집증적인 불안 때문에 깊은 잠에 들 수 없고, 침대에 누울 수 없다. 즉,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 말은 자우림의 리드 보컬 김윤아의 두번째 솔로 앨범의 첫번째 곡명이다. 개인적으로 자우림의 팬이다. 자유분방하고 유쾌하고 섹시하고, 뭔가 안온한 소시민적 삶에 안주하려는 나약한 심성을 자극하는 위태롭고 불안한 파격의 느낌을 준다. TV에서 자우림이라도 나오면, 혼자 있을 땐 펄쩍펄쩍 뛰면서 되먹잖은 춤을 추기까정 했다. 김윤아도 나도 다 젊었을 때 얘기다.


정확히 말하면 자우림을 좋아하는 더 큰 이유는 김윤아 때문. 섹시한 마녀, 검은 고양이처럼 나긋나긋하면서도 위험한 팜므파탈. 노래 잘 해, 연주도 해, 작사 작곡에 몸매도 늘씬. 게다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골이 비지도 않았다. 김윤아 같은 여자와 연애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김윤아도 나도 다 솔로였을 때 말이다.

자우림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옆길로 샜는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70년대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외국인 노동자와 늙은 과부의 사랑을 통해 독일 사회의 위선을 까밝힌 문제작..이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 내가 봤을 리 없다. 보지도 않은 영화를 왜 이야기하나? 김윤아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노래 제목을 들었을 때 어디서 많이 본 제목인데 뭘까 하다가 인터넷을 검색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큼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레옹은 마틸다와 사랑에 빠지면서(이거 로리콘이다), 처음으로 침대에 누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때까지 레옹은 보통 사람의 일상 생활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아는 사람이라고는 청부살인을 중계해 주는 식당 주인 뿐이었고, 유일한 낙은 오래된 만화 영화를 보러 가는 것.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책이나 신문을 볼 수도 없고. 직업은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다, 권총을 든채 소파에 앉아 잠을 잔다. 사람을 죽이는 능력은 정말 범상치 않지만, 사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사람이 흔히 갖는, 갖고 싶어하는 감정인 사랑에 빠지면서, 다른 사람처럼 누워 잘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고만 것이다.

멀더의 삶도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TV에 나가서도 외계인 침략이니 외계인 납치니 정부의 음모니 떠들어대는 또라이 주변에 친구가 있을 리 없다. 가끔 어울리는 건 한 술 더 뜨는 음모이론가들인 "외로운 총잡이" 멤버들이다. 키 크고 잘 생겼다는 극중의 컨셉에도 불구하고 사교성도 없어서 여자도 꼬시지 못한다. 폰 섹스 서비스를 받거나, 사무실 비디오데크에 포르노 테이프를 넣어두었다가 스컬리에게 들키기도 한다. 굉장히 쪽 팔리는 일이다.

6번째 시즌 15번째 에피소드 "악몽의 월요일 (원제 : Monday)"에서는 멀더가 물침대를 샀다가 물이 새서 자기 집과 아래층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물침대라는 건 어쩐지 러브호텔 같은 곳에나 있어야 할, 몹시 에로틱한 이미지를 준다. 다른 용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미지는 그렇다. 도대체 그런 걸 집안에 들여놓은 멀더는 뭐하는 인간이란 말인가.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멀더에게는 여자가 없다. 실제 멀더 역의 배우 데이빗 듀코브니는 상당한 플레이보이라지만, 극중의 멀더는 이성 관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잼병, 멀더를 보고 반하는 여자는 또 많지만 그림의 떡이다. 멀더의 이상과 신념을 이해하는 여자가 아닌 다음에야 멀더가 그 여자를 견딜 수 없으니까. 멀더에게 침대는 성적인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고, 포르노를 열심히 보는 것으로 미루어 추측컨대, 멀더는 성에 탐닉하면서도 성을 손에 넣을 수 없다. 멀더는 단순한 성 관계가 아니라 멀더라는 자아와 소통할 수 있는 인간 관계가 전제된 완전한 관계를 원하므로. 멀더가 원하는 여자는 聖스러우면서 性스러운 완벽한 존재. 따라서 멀더라는 인물과 침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 침대의 부재는 외롭고 불안한 멀더의 삶을 상징한다.

불안이 멀더의 영혼을 잠식한다. 항상 감시 받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멀더를 속이거나 감시하고, 그릇된 정보를 흘려 이용하거나 바보로 만들려고 한다. 언제 어둠 속의 제보자가 소식을 전해 올 지 몰라 농구공을 튀기면서 밤을 새운다. 걸핏하면 이상한 제보를 받고 오밤중에 사건 현장으로 나간다. 그 사이 잠시 잠깐 소파에 누워 눈을 붙인다. 자기 집 소파에서 모텔의 침대에서 심야 케이블 TV를 보다가 고양이 잠을 자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디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항상 손이 닿는 곳에 권총을 두긴 하지만, 총을 손에 쥐고 앉아서 자는 레옹보다는 그래도 소파에 쭈그리고 누워 자니 좀 낫긴 하다만...

댓글 1개:

  1. 멀더 방의 물침대는 시즌6의 드림랜드 라는 에피소드에서 들여놓게 됩니다. 멀더와 몸이 바뀐 능구랭이 정보기관 아저씨가 스컬리를 꼬실려고 들여놓은 거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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