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3일 목요일

[X-Files] 조연열전 #2 - 스키너 부국장

FBI Assistant Director Walter Skinner

Mitch Pileggi라는 배우가 연기한 FBI의 부국장 Walter Skinner는 시리즈 시작부터 맨 마지막 편까지 나오는 아주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스키너에 대해 말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엑스파일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에피소드 1이 아니다(스타워즈 같구만). 폭스 TV에서 시리즈의 성공에 불안했는지 파일럿 에피소드를 내보냈고, 생뚱 맞게도 이 에피소드에는 79라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 스키너는 이 파일럿 에피소드에도 출연한다.

멀더와 스컬리, 엑스파일에 협조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등장인물을 나눈다면 분명 스키너 부국장은 좋은 편에 속하지만,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스키너 부국장은 멀더의 직속 상관으로 엑스파일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말이 감독이지 사실은 감시 임무이다. 스키너가 처음 등장하는 것도 스컬리에게 멀더를 밀착 감시하라고 고위층들의 지령을 내리는 장면부터이다.

그림자 집단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공식적인 계통을 밟지 않고서도 FBI를 통제하고 있었다. 스컬리에게 지령을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 "담배 피는 남자"도 끼어 있었던 것이다. 스키너 부국장은 그림자 집단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역시 집단의 통제를 받는 존재였다.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힌 걸까. 단순히 그림자 집단이 막강한 권력을 가져서? 상부의 압력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힘 앞에 얼마나 쉽게 굴복하는지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뭐 성적인 약점을 잡혔을 수도 있지^^.

"Why FBI?"라는 글에서 후버와 FBI의 특기가 남의 약점을 잡아채서 협박하는 거라는 걸 말한 적이 있다. 스캔들을 약점으로 잡는 건 FBI만은 아닌데, 박통 시절에 YS도 비슷한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는 썰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Why FBI?"에도 썼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도 FBI에 섹스 스캔들 약점을 잡혀 있었다. 스캔들이야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의 최고는 섹스 스캔들이라.

칼 맑스 같은 사람마저도 섹스 스캔들이 있었다. 맑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의 사이에 7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그 중 넷은 어려서 죽었다. 예니는 아이들을 묻을 관을 구하느라 미친 듯이 헤맸다고 한다. 항문이 파열될 정도로 가난했지만 맑스네는 하녀를 두고 있었다. 예니의 집안은 상당한 명문가였는데, 처녀 적부터 데리고 있던 하녀를 결혼하면서도 데리고 왔고, 이 하녀는 생활고에도 맑스네를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말이지, 맑스가 이 하녀 헬레네 데무트하고 일을 저질러서 프리드리히라는 아들을 덥썩 낳아버린 것이다. 대체 예니처럼 예쁘고 지적인 마누라를 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바람을 핀 걸까. 그것도 한 집안 식구하고 말이다. 하여간 남자라는 동물은... 맑스의 평생 친구 엥겔스는 맑스네를 먹여살려준 것도 모자라 이 아이를 데려다 자식처럼 키웠다고 한다.

세계적 구라꾼 움베르트 에코는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주인공 까소봉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마르크스와 예니의 성생활은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부드러운 산문을 읽으면서 특유의 유머 감각을 접해 보면 누구든 이것을 느낄 수 있다. (중략) 줄창 끄루프스까야(레닌의 마누라) 같은 여자에게 시달리다 보면 누구든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같이 시시한 책 밖에는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 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1권, 열린책들, 2000년 3월 15일 개역판 13쇄 91페이지

맑스 가족의 단란한 한 때(1864년 런던).
뒷줄 왼쪽에 Marx, 오른쪽에는 절친한 친구 Engels
아래는 Marx의 세 딸, 왼쪽부터 Laura, Eleanor, and Jenny

3번째 시즌 21번째 에피소드 "악령의 화신(원제 Avatar)"에서 이혼을 앞둔 스키너 부국장은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찐한 베드신을 연출한다. 근데 깨어보니 여자는 죽어 있고, 스키너는 섹스스캔들만이 아니라 살인 혐의까지 뒤집어 쓰고 만다. 멀더와 스컬리를 감싸고도는 스키너를 제거하기 위한 함정에 빠진 것이다. 멀더와 스컬리의 활약으로 누명은 벗었지만 망신은 망신이다. 스키너의 베드신은 엑스파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야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스키너는 머리가 벗겨지긴 했지만 중년이라는 나이에도 상당히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니 노친네의 베드신이라고 민망하지는 않았다. 멀더의 몸매보다도 스키너 몸매가 더 나은 듯.

에피소드 "악령의 화신"
One night stand를 한 미모의 여성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놀하는 스키너 부국장

베트남전에 참여해서 전우들이 모두 죽고 혼자 부상을 당한 채 살아남는 경험을 했던 스키너는, 음모와 협잡의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처음에는 그림자 집단의 힘에 마지못해 협력하기도 했지만, 멀더와 스컬리의 직속 상관으로서 엑스파일과 부하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영어식으로 하자면 자기 엉덩이를 가리기 위해 애를 쓴다. 몰래 정보를 빼돌려 멀더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멀더와 스컬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림자 집단과 타협을 해야 했다. 그림자 집단이 보낸 자객의 총을 맞기도 하고(3시즌 15번째 에피소드 "위험한 거래" : 원제 Piper Maru) 몸 속에 심어 놓은 나노로봇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6시즌 10번째 에피소드 "최후의 24시간" : 원제 S.R.819) 그후에도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마지못해 협박에 응해야 할 때도 있었다. 배은망덕한 멀더와 스컬리는 이런 스키너를 몰라 주고 의심하고 총을 겨누기까지 한다(3시즌 2번째 에피소드 "밝혀진 음모" : 원제 Paper Clip). 이상한 약물을 먹고 신경 과민이 된 멀더로부터 주먹질을 당한 적도 있었다(2시즌 에피소드 25 사막의 증언, 원제 Anasazi). 권투로 다져진 체력으로 멀더를 밀어붙이긴 하지만 말이다.

에피소드 "사막의 증언"
멀더의 주먹이 스키너의 얼굴에 작렬 !!

하지만 곧 이렇게 형세 역전

권력과 음모에 맞짱을 뜨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책임 있는 FBI 부국장으로서 멀더의 황당한 주장에 맞장구 치기도 어렵다. 자신과 부하 직원을 지키면서 그렇다고 권력 앞에 그냥 무릎 꿇기도 어려운 스키너의 신세는, 안전 그물 없이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광대마냥 위험스러운 것이다. 자기 고뇌를 의논할 상대도 없다. "악령의 화신"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이제 스키너의 전처가 될 여자는 남편은 자기 속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만 끙끙 앓는 꽉 막힌 사림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멀더와 스컬리는 스키너의 도움을 그렇게 받고 서로 아밀라제를 상대방 안면에 분수처럼 퍼부어댔으면서도 정작 스키너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결혼했다는 것도 모른다 -_-a;;). 스키너란 인물은 이런 사람이다. 그야말로 갈등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댓글 1개:

  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금 막 2주 동안 200개 넘는 엑파 에피소드를 밥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다 봤거든요.. 절반정도는 못본 것들이더라구요. 내 청춘의 가장 질곡많던 시절에 가장 푹 빠져 들어서 보았던 시리즈였죠.. 방송프로 개편할 때마다 이번엔 엑스파일 새 시즌 안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무려 8년전에 종영했네요.. 세월아 세월아.. 난 그동안 뭘하고 살았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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